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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5주년: 민주주의를 향한 거리의 외침, 그날을 다시보다

westlife8818 2025. 4. 1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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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5주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봄의 기록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의 거리는 학생과 시민의 목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총 대신 펜을 든 이들의 외침은 단지 정권 교체를 넘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향방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3·15 부정선거’라는 뼈아픈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정선거로부터 시작된 분노의 도화선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독재를 연장하기 위한 기만의 장이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고령을 의식해, 유사시를 대비한 부통령 자리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부정을 자행했습니다.

 

  • 야당 참관인 축출
  • 공개투표 강요
  • 투표함 바꿔치기
  • 100% 득표 조작
  • 유권자 수보다 많은 투표수

 

이처럼 국민의 눈앞에서 민주주의가 짓밟혔고,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김주열 열사, 한 소년의 시신이 바꾼 역사

 

 

 

분노는 마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부정선거를 무효하라"는 구호 아래 거리로 나섰고, 경찰은 곤봉과 총으로 답했습니다.

그러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실종됐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그의 처참한 모습은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이 순간은 마침내 민심에 불을 붙이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4월 18일, 대학생의 첫 외침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선봉에 서서 "3·15 선거는 무효다", "김주열을 살려내라"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귀가하던 이들에게 정치깡패들이 무차별 폭행을 가하면서, 그 분노는 다음 날 전면적인 혁명으로 확산됩니다.

 

4.19혁명, 전국을 뒤흔든 진짜 ‘혁명’의 날

 

4월 19일, 서울의 거리에는 2만 5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연세대, 서울대, 고려대, 경희대 등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경무대(현 청와대)와 시청, 국회의사당 등지를 향해 행진했습니다.

 

 

“우리는 총을 들지 않았다. 우리는 펜을 든 학생들이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로 응수했고, 이날 하루에만 수백 명이 사상당했습니다. 시민들도 학생 곁에 섰고,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서며 도시는 항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정권의 붕괴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

 

 

결국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며 12년간 지속된 자유당 정권이 종말을 맞이합니다. 이기붕 부통령은 가족과 함께 자살했고, 민주주의는 피로 지켜낸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됩니다.

4.19혁명이 남긴 유산

 

  • 대통령 중심제 → 내각 책임제로 전환
  • 윤보선 대통령, 장면 국무총리 체제
  • 민주주의 헌법 가치 복원
  • 학생과 시민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됨

 

이 날을 우리는 단순한 시위가 아닌 ‘혁명’이라 부릅니다. 총 한 자루 없이, 목숨을 내걸고 나라의 방향을 바꾼 유일한 민중 혁명이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4.19혁명은 ‘기억’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자유와 정의를 향한 발걸음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리의 토대가 되었고,
민주주의는 누군가 대신 이뤄준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피로 지켜낸 가치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 봄, 다시 한 번 4월 19일을 기억하며 묻습니다.


“오늘 우리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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